특권 없는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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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사장님은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였다. 나는 만 20세의 어버버 외국인 인턴이었고, 그는 만 25세의 1,000명 정도 규모 회사를 이끄는 사장님이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말 한마디 못 나눠봤지만, 그의 리더십은 여운이 많이 남아있다. 미국을 막 건너간 때라, 그의 모습부터가 인상적이었다. 우선 3개월 인턴인 내 자리와 그의 자리는 별 차이가 없었다. 둘 다 트인 공간에서 30인치 모니터 두 대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The Social Network에 나오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 점심때는 하나뿐인 사내 식당에서 같은 줄을 서며 같은 밥을 먹었다.

Zuck

저커버그가 페이스북 창립 이후 매주 80시간씩 일했다고 쳐도, 지금의 자산을 시급으로 따지면 10억 원이 넘는다. (재미로 비교해보자면, 주급 5억 원의 호날두가 기원전부터 뛰어야 모을 수 있는 금액이다. 페이스북이 창립된 2004년 또래의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은 판게아 대륙이 갈라지기 전부터 근무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5명의 자산을 합쳐도 부족하다) 그렇게 1분 1초가 중요한 사람이니, 아랫사람에게 밥을 가져오라고 하는 게 더 효율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권위 대신 실리를 택했다. 그런 모습은 수평적인 회사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고, 직급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더 좋은 의견이 승리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었다.

수평적인 조직이라고 모든 사람이 만족하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리더를 비롯하여 누군가는 동의하기 힘든 결정일 때가 많다. 결정이 내려지는 속도가 불편할 정도로 빠를 때도 있다. 그리고 최종 책임은 리더가 진다. 경력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아니다. 아직 스타트업의 티를 벗지 못한 2008년에 저커버그는 구글에 있던 셰릴 샌드버그를 2인자로 영입한다. 그녀의 경력은 페이스북이 더 좋은 결정들을 내리는 데 큰 도움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경력은 절대적인 지시가 아니라, 하나의 관점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팀은 그를 바탕으로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경력은 학력과 다른 얘기다. 예를 들어, 샌드버그는 하버드에서 MBA 학위를 받았지만, 페이스북에서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능력(skill)이지 학위(degree)가 아니며, 기술 산업에서 MBA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언급했다1.

실리콘 밸리라고 원래부터 권위주의가 없는 것이 아니다. 강자의 눈치를 보고, 그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심리다. 결국,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권위주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부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실리콘 밸리의 많은 회사는 전직원 앞에서 리더들이 발표하는 All-hands meeting 문화가 있다2. 이는 한국에서 회장이나 교장 선생님의 연설과는 전혀 다르다. 이 자리에서 리더들은 전 직원을 상대로 무방비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끝나면 날카로운 질문들이 오간다. 권위만 믿고 허술하게 준비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질문을 미리 받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은 권위주의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더도 필요한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구글이 상사에게 많은 권한을 주지 않는 것도, 권위주의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White house

한국에서만 있던 내가 저커버그와 실리콘 밸리에게 놀란 것은, 권위주의나 특권 의식 없이도 리더십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 나아가서 권위주의가 없어야 더 좋은 리더십이 작동한다고 생각한다. 구글에서 대부분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모든 산업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는 이 시기에 권위주의는 점점 쓸모가 없어지고 있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고 새로운 규칙들을 배우지 않으면, 누구라도 퇴물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주위에는 다양한 형태의 권위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능력을 증명하지 못한 2, 3세들은 핏줄을 바탕으로 한 권위주의에 의지한다. All-hands meeting은 커녕 구름 위에서 지배하며, 의견은 고사하고 얼굴도 보기 힘들다. 학교에서는 2학년이 1학년에게 군기를 잡는다. 두 사례 모두 알맹이는 없고, 타이틀에서 나오는 힘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에서 유사하다. 대한항공 땅콩 사건처럼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의지가 없다는 것도 비슷하다. LG그룹 최초의 외국인 임원 쉬르데주가 <한국인은 미쳤다>에서 소개하는 일화도 흥미롭다. 그는 상무가 되고도 기본적인 의전을 받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한국인 부하 직원들은 그런 태도를 보고, 쉬르데주가 높은 지위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권위주의가 아래에서도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장용성 연세대 교수는 이렇게 껍데기를 중시하는 문화가 한국 생산성이 미국의 절반밖에 안 되는 이유라고 지적한다.3 권위주의라는 근본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 눈에 보이는 근무 시간에 집착하게 되고 생산성은 더 떨어져만 간다.

이런 문화에 익숙해지면, 조직은 물론이고, 개인도 미국 혹은 세계에서 경쟁력을 갖기 어려울 것 같다. 리더는 아래에서 들어오는 거친 질문에 초연하게 반응하기 쉽지 않다. 아래에서는 리더에게 정당한 질문을 제기하기 쉽지 않다. 미국에 처음 와서 어려웠던 점 중 하나가 백발의 교수님한테 Hey, how’s it going? 식으로 가볍게 인사하는 거였다. 왠지 고개를 먼저 숙이곤 했는데, 평등한 인사 방식의 거부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사도 어려우니 반대 의견을 내세우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그나마 일찍 왔으니 변명거리가 아니지만, 토종 한국인이 관리자(매니저/디렉터) 위치에서 성공하기 어려운 점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

Credit 🔗


  1. Did Sheryl Sandberg find her MBA helpful? ↩︎

  2. Google의 문화: All-hands meeting인 TGIF에 대한 소개. 전에 소개한 것처럼 구글과 페이스북의 제도가 많이 공론화된 것이지, 여기서는 흔한 문화이다. ↩︎

  3. 3040 파워 이코노미스트 - 장용성 연세대 교수 by 조선비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