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리뷰

· 959 단어 · 5분 소요

한 해가 다시 흘러갔지만, 학생에서 사회인으로의 전환은 진행 중인 듯 하다. 학생 시절 통하던 방식이 아닌 사회인에게 맞는 포인트들을 아직 찾는 중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학생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애썼다. 우선 프로그래밍 대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그리고 회사에 오래 남아있으면서 주어진 일들 외의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나오는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나는 무엇을 잘하지? 무엇을 하고 싶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지? 등등의 질문에 괜찮은 답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주위 세상은 빠르게 돌아갔고, 미미한 개인은 그 흐름을 따라잡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2013년과 다르게 2014년에는 답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To 2015

첫째로, 나의 목표 상을 바탕으로 현재 집중해야 할 세 가지 핵심 분야들을 다음과 같이 정해봤다: 소프트웨어 개발, 자산 관리, 커뮤니케이션. 이들을 발전시키기 위해 구글에서 쓰는 OKR 방식을 채택하여 분기마다 조금 더 뚜렷한 목표를 정하고, 평가했다. 예를 들어, 하루에 15분씩 발음 교정을 한다든지, Effective C++을 읽고 정리한다든지 하는 목표들을 채워 넣었다. 학생 시절부터 쌓여왔던 메일들이나 문서들도 이 세 가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이로 인하여 각 분야에서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어떤 것들이고, 어떤 부분을 더 발전시켜야 할지가 조금 더 명확히 보였다. 또한, 세 가지 역량의 관계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철학과 가치관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개발도, 투자도, 커뮤니케이션도, 내가 생각하는 핵심 가치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개발과 투자는 그 철학 위에서 각각의 특수한 기술적인 부분들이 합쳐져서 이루어진다. 커뮤니케이션은 나의 철학을 다양한 각도로 투영시키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다시 철학에 영향을 주며 성장해간다.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독서였다. 한 권의 책을 통해 각 저자의 삶과 철학을 놀라울 정도로 압축해서 경험할 수 있었다. 독서를 통해 저자의 삶이 내 삶에 투영되고, 나 스스로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 2014년에 읽은 책들은 순수 기술서적을 제외하면 다음과 같다.

  1. The Innovator’s Dilemma: The Revolutionary Book That Will Change the Way You Do Business — Christensen, Clayton M.
  2.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 — Christensen, Clayton M.
  3. Lean Analytics: Use Data to Build a Better Startup Faster. — Croll, Alistair
  4. The Worldly Philosophers — Heilbroner, Robert L.
  5. The Snowball: 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 — Schroeder, Alice
  6. Resource Revolution: How to Capture the Biggest Business Opportunity in a Century — Heck, Stefan
  7. 문병로 교수의 메트릭 스튜디오 — 문병로
  8. Blindness — Saramago, José
  9.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 이원재
  10. The Wall Street Journal Guide to Information Graphics: The Dos and Don’ts of Presenting Data, Facts, and Figures
  11. The Retail Revolution: How Wal-Mart Created a Brave New World of Business — Lichtenstein, Nelson
  12. One Up On Wall Street: How to Use What You Already Know to Make Money in the Market — Lynch, Peter
  13. The Art of Explanation – Making Your Ideas, Products and Services Easier to Understand — LeFever, Lee
  14.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15. Joel on Software — Spolsky, Joel
  16. The Signal and the Noise: Why So Many Predictions Fail – But Some Don’t — Silver, Nate
  17. 나의 한국현대사 — 유시민
  18. The Alliance: Managing Talent in the Networked Age — Hoffman, Reid
  19. The Cathedral & the Bazaar: Musings on Linux and Open Source by an Accidental Revolutionary — Raymond, Eric S.
  20.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An Inquiry Into Values
  21. How Google Works — Schmidt, Eric
  22. Zero to One: Notes on Startup, or How to Build the Future — Thiel , Peter
  23. Winning without Losing: 66 Strategies for Succeeding in Business While Living a Happy and Balanced Life — Martin Bjergegaard, Jordan Milne

기회가 되면 시간을 투자해서 깊이 리뷰하고 싶은 좋은 책들이었다. 우선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2, 14, 18, 20, 23), 내가 사는 시스템의 근간은 어떻게 되어 있는지(4, 7, 9, 16, 17)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이 고민의 연장 선상에서 자본주의의 큰 축을 이루는 기업들의 생태계에 관한 책들(1, 3, 5, 6, 11, 12, 21, 22)도 많았다. 그 외에 소프트웨어 개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술과 문화에 관한 책들(10, 13, 15, 19)도 큰 부분을 차지했다. 위에 속하지 않은 책은 8뿐인 것을 보면 편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흥미가 가지 않는 책들은 시간을 쪼개면서 읽기 힘들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 같은 경우는 비소설보다 소설에서 더 많은 영감을 얻는다는데, 언제 그런 레벨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Library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하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업무가 MMORPG 개발에서 메시징 분산 서버로 넘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MMORPG는 굉장히 상태 의존적이다 (stateful). 각각의 케릭터가 한순간에 가진 상태는 능력치와 다양한 장비들로 인하여 큰 복잡도를 갖고, 그런 케릭터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빠르게 공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게임들은 채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같은 채널에 있는 적은 수의 사용자들만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한다. 메시징 분산 서버에서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사용자가 같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각 유저의 상태는 비교적 단순하다. 또한, MMORPG는 문제가 생기거나 업데이트를 하는 경우 가상 세계를 멈추는 옵션이 있지만 메시징에서는 그런 옵션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사용되는 기술들도 차이가 명확했는데, 두 조직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경쟁력을 갖기 때문에 배울 점들이 많았다. 투자자로서는 작년보다 더 소극적인 한 해였다. 하지만 미흡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꾸준히 고민했고, 애초에 포지션을 바꾸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아직 자세히 언급할 단계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이 분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질 것 같다. 반면 커뮤니케이션 부분은 굉장히 미흡했다. 몇 달 전부터 목표해두었던 개인 페이지도 내놓지 못했고, 목표한 만큼 많은 글을 쓰지도 못했다.

위와 같이 정리하면서, 회사의 조직 개편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리드 호프먼의 책을 읽은 이후로 나 자신을 하나의 기업을 운영하듯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회사가 성장하면서 계속해서 비전과 조직을 수정해야 하듯이 개인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그렇게 보면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넘어갈 때는 힘든 변화를 거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2015년 초까지는 이 전환을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위에서 언급한 틀을 다지는 데 주력할 것 같다. 큰 변화가 목전에 와있고, 필요할 때 추진력을 갖기 위해 아직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인다. 여러 가지로 기대되는 한 해이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다 깨달았다는 착각 속에 살았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더욱 생각이 많아진다. 사실 지금 나의 모습은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많다. 그렇기에 2025년을 생각하면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Credit 🔗

  • Stockholm City Library | © Samantha Marx / Flickr